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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잊지 않는다. 결코.

작년 년말의 버마 민중들의 해방의 몸짓이 잔인한 군부의 군화아래 짓밟혀지고 총칼의 날카로움이 그들의 신체를 해함으로서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버마를 옹호했다. 버마군부 정권을 비판했으며 버마 민중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사실 나의 자아적 기억은 대략 지금 추정해 보건데 3~4살 이후에 형성된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난 해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대학가의 학원자율화 조치를 취한해이며, 그것을 기회삼아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6월항쟁을 이끌어 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갓 동네 슈퍼와 길건너 놀이터등 주위의 환경에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인식할 무렵, 동네와 할머니와 엄마가 같이 소매업을 하던 구역이 바로 경북대학교와 대구 중심부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코스이며 필연적으로 학생시위대와 전경들이 맞부딛히던 장소였기에 시위가 종종 일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력하게 남아있던 기억은 바로 여름의 기억이었다. 한동안 혼자서 동네에 나가노는 것은 통제되었으며, 보호자와 동반하여 나갈때에도 자욱한 최루탄연기에 마스크는 필수품이었다. 돌과 화염병 오갈때도 있었고, 전통적으로 보수도시였던 까닭에 시위대의 숫자가 다른 동네보다 적었던 터라 전투경찰과 백골단(이명박이 부활시킨다고 하는)이 강하게 진압하던 모습도 보았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시위대가 경찰의 경계선을 돌파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 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해 엄마의 손을 붙잡고 투표소라는 것을 처음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결국 그해 여름 길거리에 나와있던 사람들에 의해 나는 20여년 지난 후 지금, 여러가지 자유의 혜택과 투표라는 권리를 무상으로 획득한 셈이다.

 

 작금 봄이 오는 이시기에 티베트에서 민족해방운동의 슬픈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나마 천안문에서 2개월 동안 점거농성의 시간을 인내해주던 중국공산당은 소수민족에게는 인내를 발휘하지 않았다. 그것은 20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은 지금 짓밟히고 끌려가고 감금당하고, 구타당하고 고문당하고, 억압받고 있을 것이다.

 

 티베트의 해방은 나의 해방이며, 티베트의 기억은 나의 기억이기도 하다. 22년전 길거리에서 공권력에 맞서가며 싸웠던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만한 권리를 누릴수 있고, 또한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이 땅에 다시 군부 정권을 잡을 수가 없듯이, 티베트의 해방은 우리에게 해방의 열매를 나누어 줄것이다. 티베트의 기억은 내 이웃의 기억이기에 나의 기억이다. 그만한 양심도 없으면 감히 어디가서 사람행세도 하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꽃을 꺽어버릴 수는 있어도 결코 봄을 지배할 수 없다"-빠블로 네루다.

 

 그들에게 봄조차 빼앗길 순 없지 않은가.

by 소금인형 | 2008/03/18 11:49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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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자작나무통신- 예산읽기.. at 2008/03/24 10:35

제목 : 내가 만난 티베트
요즘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티베트 소식을 보고 있노라면 80년 5월 당시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광주가 딱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간간히 비치는 영상은 끔찍한 양민학살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영상 자체만 갖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띠엄띠엄 나오는 영상을 통해 추론이 가능하다. 아, 한국의 정규군이 광주를 포위한 다음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있구나. 티베트......more

Commented at 2008/03/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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